본문 바로가기

He's Column/Social

[소셜미디어와 여론]높아진 여론 쏠림의 파고… 신뢰로 쌓은 탑은 잠기지 않는다

LG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입니다. 소셜미디어와 여론에 대해 아주 재미있게 파헤친 보고서 여서 공유합니다!

 

 

오늘날 이슈의 생성, 확산은 과거 주요 대중 언론이 여론 형성을 장악하던 시대보다 예측과 관리가 훨씬 어려워지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의 빠른 확산, 개인이 발제자이자 전파자가 되는 상황, 그리고 이 효과를 증폭시키는 소셜 게릴라들의 등장은 오늘날 달라진 여론 형성의 모습이다.

네트워크 시대에는 다양한 생각의 소통으로 집단 지성이 발휘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정보를 공유해 집단 내 극단적 여론 쏠림 현상이 종종 나타나고 있다. 여론 쏠림이 나타나면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여론의 뭇매를 맞거나 작은 실수가 기업 전체의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여론은 더 이상 기업이 손 쓸 도리가 없다. 제품의 인상을 결정하는 고객 접점의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은 검색의 순간(Zero Moment of Truth)에서 확인된 부정적 여론에 밀려 기회조차 잃을 수 있다. 부정 여론에 대한 섣부른 방어는 오히려 역풍을 맞게도 한다. 따라서 애초에 작은 실수나 결함이 극단으로 번지지 않게 빠른 초기 대응이 필요하며 평소 대중의 가치와 분위기를 모니터링 해 잠재적 위기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 비난 여론을 감추려 하기보다 기업이 관리할 수 있는 영역에서 소통하는 노출의 기술도 필요하다. 새로운 미디어의 부상에 맞추어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변화시키고 평상시 좋은 평판 자산을 쌓는 것도 여론의 파고에서 기업을 지키는 길이 될 것이다.

쏠림이 아닌 다양성이 가치를 발하는 진짜 네트워크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업은 고객과 사회가 터무니없는 루머나 작은 실수에 등을 돌리지 않게 평상시 신뢰라는 자산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지난 2월, 임산부 폭행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글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사건이 벌어졌다. 해당 사건이 발생한 프렌차이즈 음식점은 하루 종일 주요 포탈의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라 있었다. 업체측의 발 빠른 사과가 있었지만 해당 음식점에서 겪은 각자의 불쾌한 경험들이 속속 쏟아지면서 대중의 공분은 사그라질 줄 몰랐다. 대중은 이 사건에서 무엇을 보고 그토록 분노한 것일까? 사실 이 사건은 다양한 각도에서 이야기될 수 있었다. 고객의 권리가 어느 때 보다 높은 시기에 서비스 관리의 작은 잘못이 불러올 수 있는 화를 보여주는 사례, 임산부 보호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회적 배려조차 실종된듯한 세상에 대한 경종, 아니면 서비스 업종 등 감정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주로 폭행과 거짓말에 모아졌던 듯 하다.

사건의 본질보다 흥미로운 것은 사건에 대한 사실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보여지는 여론의 변화였다. 처음에는 주요 토론방 및 카페를 통해 피해사실이 전파되면서 피해자에 대한 옹호와 해당 업체측에 대한 분노 일색이었다. 사실 피해자 일방의 주장이었기 때문에 냉정하게 따진다면 주장에 과장은 없는지 누군가는 의문을 제기해 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고라에 올라온 최초의 펌글에 달린 129개의 댓글 중 10여 개만이 쌍방의 주장을 들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게다가 이 소수의 중립적 댓글이 오히려 매도당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처음 글을 올렸던 피해자의 주장에 과장이 있음이 밝혀지자 이번에는 해당 여성에 대한 마녀사냥식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 여성의 과거 SNS 행적들을 파헤치며 실명이 거론되고 다양한 인신공격이 시작되었다. 극단적인 반응이 차분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Ⅰ. 과거와는 달라진 네트워크 시대의 여론 형성

이 사건은 네트워크 시대 여론 형성의 여러 가지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첫째, 일단 수면위로 떠오른 사건은 손쓸 틈 없이 빠르게 진행된다. 피해 여성이 최초로 글을 올리고 부정적인 여론에 업체측이 공식적인 사과 입장을 밝히는 데까지는 1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발 빠른 대응에도 불구하고 해당 이슈는 그 날 하루 종일 포탈 사이트의 1위를 점하며 이미 대중들에게 알려진 뒤였다.

둘째, 대중 언론이나 경찰이 아닌 개인이 이슈를 제기, 전파할 수 있는 주체가 되었다. 예전에는 사회적 이슈가 생성되려면 경찰 고발이나, 소비자 단체, 언론 제보 등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피해 당사자 한 사람이 별다른 비용이나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사회적 이슈를 만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사건에서도 임산부 여성이 한 일은 인터넷 게시판에 억울함을 토로하고 SNS를 통해 이슈 전파를 요청한 것뿐이었다. 과거에 이슈 생성자였던 경찰과 언론은 이제 이미 만들어진 여론을 뒤쫓아 갔다. 2009년 26일 동안의 트위터 전체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한 번 리트윗 된 내용은 평균 1,000명에게 전파되고 4단계만 거치면 사실상 모든 사용자에게 전달된다고 한다. 따라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언론과 주요 관계자를 입막음한다고 사건이 덮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셋째, 사건을 증폭시키는 소셜 게릴라들이 등장했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만들기 위해서는 질적, 혹은 양적으로 이슈를 확산시켜 줄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한데 소셜 게릴라들은 자발적으로 생성되어 의혹을 지지, 후원한다. 이 사건도 육아관련 인터넷 카페를 통해 처음 확산되어 임산부라는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의 지지를 급속도로 확보할 수 있었다. 카페 회원들은 음식점에 항의글을 남기는 한편 조직적인 불매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소셜 게릴라가 반드시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유명 가수가 사건 발생 후 해당 음식점에서의 불쾌했던 경험을 언급해 부정적 여론에 불을 지폈듯이 소셜 게릴라는 사안에 따라 자유롭게 이합집산한다.

또 이들은 사건을 단순히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이슈를 만들거나 가해 기업에 구체적 행동을 요구한다. 지난해 페덱스(FedEx)는 고객의 물품을 부적절하게 취급한 배달원의 동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돼 곤욕을 치렀다. 제품은 컴퓨터 모니터였고 주인은 집 안에 있었지만 배달원은 벨을 누르고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대신 제품 상자를 담장 너머로 던진 것이다. 유튜브에 올라온 CCTV 동영상은 8백만 건 이상의 히트를 기록했다. 문제는 그 이후 여기저기서 페덱스나 UPS 등 배송업체 직원의 근무 태만을 보고하는 비디오들이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회과학에서는 군중(Crowd), 또는 대중(Mass)과 구분해 정보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공중(Public)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소셜 게릴라는 바로 인터넷 시대가 만들어낸 공중이다. 공중이 된 소비자는 기업 활동에 훨씬 더 깐깐한 감찰자가 될 것이다.

넷째, 제기된 의혹이 이슈화 되는 데는 사실관계보다 정서적 공감이 중요하다. 음식점 사건에서도 피해자의 주장 외에 다른 증거가 없었지만 ‘임산부’라는 약자에 대한 폭행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행동했다. 그 주장에 과장이 있음이 밝혀진 이후 여론이 마녀사냥으로 이어질 만큼 급 반전한 것은 감정적으로 공감했던 것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감정이 여론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고소·고발과 같은 법적 대응이나 공식적인 사과는 점점 효과가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해외 기업들의 경우 논란이 된 문제에 대해 CEO나 총 책임자가 직접 이름을 걸고 사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CEO 한 사람의 잘못도 아니고 ‘임직원 일동’의 사과가 CEO 한 사람의 사과만 못한 것은 아니지만 보다 인간적인 호소를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페덱스도 유튜브 동영상 확산 이후 ‘절대적으로, 분명히, 수긍불가(Absolutely, Positively, Unacceptable)’라는 내용의 사과글과 CEO 동영상을 올려 진심을 전하려 했다.

Ⅱ. 쏠림이 일어나는 이유

10년 전 한 작은 웹사이트가 사람들에게 우리들만의 백과사전을 만드는 데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오늘날 집단 지성의 거대 산물이 된 위키피디아의 등장이다. 위키피디아의 성공 체험은 사람들이 의견과 지혜를 나누면 더 나은 대안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세상을 한껏 고무시켰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아직도 많은 경우에 집단이 항상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이슈화 과정에서 경찰이나 언론과 같은 일종의 게이트키퍼 없이 빠르고 때로는 감정적으로 확산되는 여론은 극심한 쏠림 현상을 만든다.

인터넷 정보 선택의 특징

오바마 행정부에서 전자정부 수장을 맡고 있는 캐스 선스타인(Cass Sunstein) 교수는 인터넷이 지닌 탁월한 자기 필터링 기능이 극단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대중 매체에서는 개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자신과 다른 생각,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뉴스만 선택하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과만 소통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 더 심한 분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정보의 편식은 인터넷 뉴스의 댓글들만 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보수, 진보적 성향을 띤 언론의 성격에 따라 댓글을 다는 사람들의 성향도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뿐만 아니다. 집단 안에서 사람들은 주변의 평판과 압력을 고려해 대세를 따르거나 의견이 다를 경우 아예 침묵해 버릴 가능성이 높다. 동조화의 결과 나타나는 쏠림은 집단 내 유대감이 강할수록 극명하게 나타난다. 소셜 게릴라와 같이 특정 이슈에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움직이는 소비자 집단이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이유다.

마케팅 조사에서 B2B 기업들의 경우 FGI와 같은 고객 집단면접은 잘 선호되지 않는 방식이다. 고객의 수가 적기 때문에 일면 정량적 서베이를 대체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같지만 그만큼 고객들간의 의견 교환에서 나타날 수 있는 고객 불만 정보의 공유, 극단화라는 부작용이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에서는 다양한 정보, 다양한 의견이 만나 발전적인 집단 지성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반대되는 현상이 종종 벌어진다. 자유로운 네트워킹과 공유의 역설이다.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

극단화 발생을 설명하는 또 다른 원인은 집단, 혹은 사회에 퍼져 있는 사회적 분위기다. 여론은 집단 안에 퍼져 있는 특정 규범들을 따르는 방향으로 발휘되기 쉽다. 예를 들어 과거 경제 성장기와 비교했을 때 오늘날은 기업의 탐욕과 심각한 부정행위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높아져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기업 부정행위에 대해 온건한 입장보다는 강경한 입장을 주장하기가 훨씬 더 쉽다. 누군가는 기업에 대한 지나친 처벌이 불합리하다 생각할지라도, 이러한 주장이 남들 눈에 이상한 사람으로 비쳐진다는 점을 잘 알고 침묵할 것이다. 결국 기업 부정행위에 대한 여론은 강도 높은 처벌로 이어지기 쉽다.

오스트리아 미래탐구학회인 케노스서클(Kenos Circle)의 설립자 존 L. 캐스티는 미래에 대한 집단의 신념, 내부에서 만들어진 ‘분위기’가 결과적으로 나중에 그 집단이나 사회가 경험하게 될 사건의 방향을 한쪽으로 몰아간다고 말한다. 이러한 판정으로 보면 부실한 프랜차이즈 관리, 임산부 배려 부족, 감정 노동자들의 고통 등 다양한 사회적 분위기가 음식점 폭행 사건 관련 여론의 배후에 깔려 있었다고 볼 수 있다.

Ⅲ. 쏠림이 위험한 이유

사실 쏠림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유행을 만들고자 하는 기업에게 어찌보면 쏠림은 매우 반가운 현상이다. 또 집단화된 행동이 긍정적 방향으로 발전할 때 세상은 더 나은 곳이 될 수 있다. 오늘날 소셜 미디어 등의 등장으로 기업 외부 인터넷 공간에서 생긴 작은 변화나 파장이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가리켜 ‘그라운드스웰(Groundswell)’이라는 말을 쓴다. 기업은 그라운드스웰을 관리하고 싶어 한다. 문제는 이것이 쉽게 관리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이해관계로 얽혀진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에서는 부정적 쏠림의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맥도날드는 최근 #McDStories라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맥도날드에 대한 최고의 경험을 공유하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하지만 환경운동가들과 불만족한 고객들의 불평이 페이지를 도배하기 시작했고 결국 맥도날드는 계정을 폐쇄했다. 이 사건은 오늘날 여론 형성에 있어서 기업의 무력함을 명백히 가르쳐 주었다.

높아진 여론 관련 위기 빈도

기업이 근거 없는 루머나 예상치 못한 평판 위기에 직면하는 것이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다. P&G가 사탄교와 관련되었다는 루머는 20년간이나 떠돌았다. P&G의 루머는 잠잠해졌지만 오늘날 루머나 평판 위기의 피해는 기업 전반에 걸쳐 더욱 심각해 진 것 같다. 2010년 한국 100대 기업들의 위기 유형을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 기업들이 최근 3년 간 가장 많이 경험했던 위기 유형은 정보관련 위기(37.4%)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악성 유언비어나 이미지 손상 관련 위기가 전체 위기 종류 중 20.8%를 차지했다. 특히 정보관련 위기는 10년 전 동일한 조사가 실시되었을 당시에는 중요하게 언급되지 않아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다른 위기와 비교해 보아도 생산 및 판매 과정의 위기가 28.4%, 경제적 위기가 20% 수준임을 감안할 때 오늘날 여론으로 야기될 수 있는 위기의 발생 가능성은 높은 수준이다.

심각해지는 처벌 수준

극단적 쏠림으로 근거 없는 루머는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고 작은 실수가 공중에게 사건의 경중 이상으로 처벌받기도 한다. 기업들의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배심원들의 태도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집단 토론을 거친 후의 배심원단은 토론 전 개개인이 제시했던 배상금 규모보다 더 높은 배상금을 책정했다. 결국 집단이 모여 분노를 공유하게 될 경우 사람들은 처벌의 수위에 있어서도 훨씬 더 가혹한 입장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는 여론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기 쉬운 오늘날 기업의 작은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이미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소비자들의 집단 행동이 그 증거가 되고 있다. 댄 라이언스(Dan Lyons)라는 블로거가 이끄는 iPhone Nation이라는 소비자 단체는 아이폰 출시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터넷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잦은 서비스 장애를 일으킨 AT&T에 보복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특정일을 지정해놓고 데이터 사용량을 폭증시켜 네트워크를 망가뜨리고 회사측의 사과를 받아내자는 것이었다. 다행히 AT&T측에서 이 문제를 이틀 전 발견하고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 공식적인 공격은 철회되었지만 이미 수천 명의 사람들이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지지를 표하며 모여든 상태였다. 프랑스 사회학자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소비는 매우 개인적인 행위이고, 소비자는 ‘고립되고 뿔뿔이 떨어져서 기껏해야 서로 무관심한 군중이 될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텔레비전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에 대해 집단적으로 항의한다든가 하는 사태는 상상할 수도 없다는 그의 단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여론의 쏠림이 위협적인 이유는 소비자가 직접 행동으로 응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목 받지 못한 기업의 한계

잘못에 대한 처벌이 아니더라도 긍정적 여론의 수혜자가 되지 못한 기업들은 성장의 모멘텀을 얻기 어렵다. 국내 영화의 경우 개봉 2주 안의 온라인 리뷰가 흥행 성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고 그 영향력은 감독이나 배우, 배급사를 압도한다. 구글의 마케팅 총괄 디렉터 짐 레신스키(Jim Lecinski)는 고객이 제품과 서비스를 대면하고 그에 대한 인상이 결정되는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 전에, 검색을 통해 먼저 판단하는 ZMOT(Zero Moment of Truth)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즉 지금까지는 매장이나 경험 과정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지만 이제 ‘검색’이 구매의사결정의 핵심 축을 담당하기 때문에 이 단계의 중요성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레신스키가 보고서에서 언급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의 70%는 구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제품 리뷰를 검색하고 83%의 엄마들은 관심가는 제품의 TV광고를 보면 온라인으로 조사를 한다. 결국 평판이 제품에 대한 인상을 결정짓고 평판이 나쁘면 진실의 순간에도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여론이 형성되고 그대로 드러나는 인터넷 공간의 특징을 볼 때 부정적 쏠림은 만회가 어렵다.

Ⅳ. 기업이 여론의 파고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안타깝게도 부정적 인식은 때로는 사실관계보다 더 중요하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의 음식점과 관련한 트위터와 블로그상의 여론은 임산부의 주장에 과장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 이후에도 한동안 부정적이었다. 네트워크 경제의 특성상 빠르게 전파될 수 밖에 없는 이슈는 일단 퍼지면 막을 수 없다. 다만 애초에 사건이 극단적으로 번지지 않게 원천을 차단하고 확대 후에도 쏠림이 빨리 안정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초기 대응의 중요성

온라인상에서 기업이슈가 생성, 확산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초기 고객의 항의에 기업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경우가 상당수다. 온라인에 문제를 제기하는 고객은 대부분 그 이전에 오프라인에서 기업과 직접 문제 해결에 실패한 후 온라인으로 넘어온다는 것이다. 사실 아주 치명적인 잘못이 아니라면 잘못된 제품, 서비스만으로 집단적 공분을 일으키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형성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사실 여부보다 감정적인 데 있기 때문이다. AT&T를 대상으로 공격을 결심했던 아이폰 사용자들의 연맹도 서비스 불만에 대한 기업의 미온적 대응에 점화된 것이다. 2005년 델을 위기에 빠트렸던 “Dell Hell”이라는 안티 블로그에도 델은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했고 이것이 문제를 확산시켰다. 델 컴퓨터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블로그의 내용은 다른 블로그로 전파되고 가디언(Guardian)지 같은 주요 언론에도 소개되었다. 델의 시장가치는 2005년 1월 1,037억 4천만 달러에서 2006년 7월 492억 5천만 달러로 반토막 나기에 이른다. 물론 이 시기의 실적 악화가 순전히 Dell Hell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안티 블로그의 출현과 이에 대한 델의 대응 자체가 델의 품질 문제와 잠재된 위기를 보여주는 것이었을 수 있다.

대중의 분위기를 감지

대중매체의 시대에는 쟁점이 생길 때 집단화된 행동을 하는 공중이 등장했지만 네트워크 시대에는 항상 공중이 존재한다. 그리고 공분을 살만한 큰 사건이 터지면 거대한 사회적 힘으로 순식간에 전환된다. 따라서 기업 경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회적 가치의 변화, 보다 구체적으로는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대중의 분위기를 수시로 모니터링하는 것이 필요하다.

빅데이터 시대에는 사람들에게 느낌을 직접 묻는 대신 기술적 도구를 통해 이를 확인해 내는 것이 가능하다. 몇 해 전부터 전문 서비스가 시작된 ‘정서분석(sentimental analysis)’은 대중의 분위기를 감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될 수 있다. 정서분석은 블로그, 소셜 미디어 등 인터넷에서 수집한 의견들을 사용자들의 집단의식을 반영하는 하드데이터(hard data)로 바꾸는 과정이다. 2009년 5월 스터브허브(Stubhub)라는 티켓예매사이트는 비로 연기된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간의 경기 직후 부정적 정서를 감지해 사전 대응한 사례다. 경기장 관리자들이 경기가 취소되었다고 잘못된 정보를 공지했는데 실제로는 연기되었을 뿐 경기는 진행되었다. 내부 규정에 따라서는 경기가 진행된 경우 환불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떠도는 부정적 정서를 감지하고 성난 팬들에게 할인권을 제공하기로 했다. 또 이 사건을 계기로 해당 경기에 대한 문제뿐 아니라 악천후 규정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정서분석이 큰 위기로 덮쳐올 지 모를 미래를 감지하기 위한 탄광의 카나리아 역할을 했던 셈이다.

비난 여론을 관리범위 안으로

나쁜 뉴스를 숨기는 것이 불가능해 진 지금은 차라리 먼저 알고 드러내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 수 있다. 실제로 미시간 대학병원에서는 의료사고 논란으로 확대될 수 있는 사안들의 처리 절차를 바꾸는 것 만으로도 의료사고 관련 소송 건수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기존에는 환자의 항의가 들어오면 변호인이나 사고 관리팀이 나섰지만 의료진이 환자와 직접 해명에 나서게 한 것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여론에 신중을 기한다는 목적이라도 고객과의 소통 절차를 복잡하게 하는 것은 기업과 소비자 집단의 관계에서 더 이상 현명한 전략이 아니다.

고급 호텔 체인인 포 시즌즈(Four Seasons)는 지난 1월부터 웹사이트를 재정비하며 최대 여행후기 사이트인 트립 어드바이저(Trip Advisor),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올라온 고객 후기를 게시했다. 온라인 사이트에서 고객들의 후기 게시판을 운영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지만 기업 입장에서 관리할 수 없는 의견들까지 내부로 끌어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물론 단순히 서비스에 대한 자신감의 발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객 의견이 한 곳에서 해소될 수 있게끔 함으로써 잠재적 위기 발생시 전선을 한 곳에 모으는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Dell Hell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델도 이후 아이디어스톰(Idea Storm), 스튜디오 델(Studio Dell)과 같은 고객 의견 사이트를 운영하며 성공적으로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는 기업으로 평가 받게 되었다. 결국 고민해야 할 것은 기업의 실수가 그대로 드러나게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기업의 약점을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할 것인지에 관한 ‘노출의 기술’이다. 적어도 고객이 기업에 불평을 하기 위해 맘스홀릭이나 아고라를 먼저 찾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달라진 여론의 역학관계를 이해

여론을 움직이려면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가야 한다. 오늘날 온라인 공간이 여론 쏠림을 만드는 주체라면 해명도 그 곳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2009년 대규모 리콜 사태로 회사가 흔들린 도요타는 위기 발생 직후부터 적극적인 유튜브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했다. 또 CEO가 주요 언론도 아닌 추천 소셜미디어 사이트 디그(Digg.com)에 도요타 리콜에 관한 1400여 개의 질문에 대한 30분짜리 동영상을 직접 제작해 답변하는 성실함을 보이기도 했다. 오늘날 미디어의 달라진 힘의 이동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 기업 홍보팀에서 주요 언론사를 관리했던 것처럼 오늘날 여론 형성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있는 IBM, 인텔과 같은 기업들은 SNS도 관리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SNS에서 관리해야 하는 위기 유형과 대응 절차 및 임직원 활용 규정 등이 담겨있는 가이드라인도 운영한다. 이는 외부로부터의 위기를 관리하는 차원인 동시에 직원 개개인의 소셜미디어 활동이 늘면서 내부로부터 파급될 수 있는 문제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다. 실제로 기업의 트위터 관리자, CEO 등의 개인적 발언이 파장을 불러일으킨 사례가 적지 않다. 패션 기업 케네스 콜(Kenneth Cole)의 설립자는 아랍 혁명 초반에 혁명을 가볍게 여기는 발언으로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 “카이로에서 수 백만 명이 야단이다. 우리의 봄 시즌 컬렉션이 발매되었다는 루머가 나돌고 있는 것 같다”라는 농담은 온라인상에서뿐 아니라 주요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새로운 파워 미디어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

평상시 좋은 기업이 되어야

여론의 쏠림은 근본적으로 고정관념에서 출발한다. 특정 사안에 대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이 정보 편향과 집단 동질화를 통해 더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것이다. 따라서 평상시 사람들의 뇌리에 긍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던 기업은 부정적 여론의 움직임에도 상대적으로 오래 버틸 수 있다. 에델만(Edelman)의 2011년 신뢰 척도 보고서에 따르면 신뢰하고 있는 기업에 대한 긍정적 정보는 이해관계자들의 51%가 믿고 부정적 정보는 25%만 믿는다. 반대로 불신하고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15%의 이해관계자만이 해당 기업에 대한 긍정적 정보를 믿었으며 부정적 정보에 대해서는 57%가 믿는다고 응답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부정적 여론의 파고를 피해가기에 앞서 신뢰받는 기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나친 자기방어보다는 소통

과거 문제 발생시 고소, 고발은 기업의 무고함을 단호하게 표시하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소통을 원하는 대중에게 법적 무고함을 호소하는 것 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사람들이 어떤 것을 위기라고 믿는다면, 실재로 그러한 위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위기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8년 8월 인도네이사의 유명 병원인 ‘옴니국제병원(Omni International Hospital)’에서 통원치료를 받던 주부 프리타(Prita Mulyasari)는 친구에게 한 통의 이메일을 보냈다. 병원의 오진과 치료 부작용으로 고생했으나 병원측에서 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내용이었다. 이메일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삽시간에 인터넷에 퍼졌다. 병원은 프리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그녀는 6년 형을 살거나 병원측이 요구한 손해배상금 2억 루피아(약 2500만원)를 물어주어야 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판결의 부당함에 반대하면서 ‘프리타의 정의를 위한 동전’모으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그리고 짧은 기간 안에 3억 루피아(약 3900만원)가량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대중이 궁금한 것은 의료진의 무고함이 아니었다. 그녀가 환자로서 충분한 대우를 받았는가였다. 보상금 등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블랙 컨슈머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기업이 고객을 위해 어디까지 묵인해야 하는가는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지나친 방어로 자유로운 소통을 제한하려는 시도는 신중해야 한다.

Ⅴ. 집단 지성이 주도하는 네트워크 사회가 되려면

오늘날 나타나는 여론 쏠림은 개방, 참여, 소통이라는 웹 2.0 시대를 그릴 때 예기치 못했던 부작용이다.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네트워크시대에 여론의 생성과 확산은 관리 불가능한 것이라는 말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네트워크 시대에 다양한 생각과 지식의 교환으로 발전적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허상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인터넷 시대의 편향적인 정보소비가 여론 쏠림을 유발한다는 선스타인 교수의 주장은 반전의 여지가 있다. 뉴스 소비를 예로 든다면 사람들은 보고 싶은 뉴스를 골라 보기도 하지만 추천을 통해서도 뉴스를 본다. 물론 추천자도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고 내가 다른 의견을 접하긴 하였지만 귀담아 듣지 않는다면 별 소용이 없다. 그래도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 줄만한 뉴스를 접할 가능성은 사실 과거보다 지금이 훨씬 더 높다. 비록 최근 몇 년 간의 눈부신 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현재 만들어가는 네트워크 세상은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개인의 네트워크가 여러 범위로 확장될수록 다양한 생각을 접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쏠림이 아닌 다양성이 가치를 발하는 진짜 네트워크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많은 정보 자체가 집단 지성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은 이미 확인했다. 한사람 한사람이 나의 생각과 다른 정보에도 귀를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극단으로 쏠리는 여론에서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정보 큐레이터로서의 기성 언론의 역할이 더 요구되기도 한다. 그리고 기업은 고객과 사회가 터무니없는 루머나 작은 실수에 등을 돌리지 않게 평상시 신뢰라는 자산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LG경제연구원 정지혜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