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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s Column/Web2.0

당신은 다운로드 없이 살 수 있습니까?

패러다임 변혁의 차원에서 해석한 다운로드 문화
2007.01.22 / 허지웅 기자

다운로드. 이미 너무 식상하지만 동시에 현재진행형의 화두임에 분명하다. 다운로드 문화는 준법정신이 증발된 파렴치 행위인가, 시대성이 반영된 패러다임의 전환인가. 혹은 그 어느 사이에 걸쳐 있는 과도기적 현상인가. 개인의 라이프스타일 깊숙이 침투한 다운로드 문화를 조명해보고, 이를 새로운 시장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을 고민해본다.

다운로드 문화가 이미 우리 생활 전반을 지배하고 있음을 설명하기 위해 굳이 어떤 사례들을 모아 대단히 신기하고 새로운 장면인양 늘어놓는 일도 참 부끄럽고 궁색한 노릇이다. 매일 공기를 먹고 사는 우리에게 ‘산소’라는 말이 문어체마냥 언뜻 생소하게 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련의 일상적인 행동양식을 ‘다운로드 문화’라는 말로 규정지어 생각지 않을 뿐이니까. 우리가 숨 쉬고 밥 먹고 일하고 잠자는 것처럼 매우 자연스레 하나의 동영상 파일이 넷상에서 컴퓨터로 다운로드 되고 실행된다.

자, 문제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시피 이게 대부분 불법이라는 사실이다. 정당한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은 상용자료를 P2P웹하드에 업로드하거나 이를 다운로드받는 행위는 명백한 범법행위다. 하지만 저작권 소송은 기본적으로 친고죄 조항에 속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아니고서야 문제를 제기하기 힘들다. 익명성을 강조하는 인터넷 시스템의 속성상 저작권자가 P2P웹하드 이용자를 일일이 검색해 잡아내는 데도 한계가 있다. 덕분에 DVD와 비디오를 비롯한 한국의 부가판권시장은 벌집 쑤셔 놓은 듯 ‘완벽하게’ 초토화됐다. 미국에서 하루 500만 장이 팔린 <해리 포터> DVD는 한국에서 1년 동안 10만 장이 채 팔리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할리우드 직배사인 파라마운트와 유니버설은 한국에서 DVD사업부를 철수시켰고 워너브러더스와 브에나비스타, 소니픽쳐스 역시 관련사업 축소를 계획 중이다. 작년 2월 불법 영화파일 신고포상제도 ‘영파라치’가 시행되기도 했지만 다운로드 문화에 일대 변혁을 일으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이 빤한 과거사를 들추려고 시작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어떻게 다운로드 문화를 근절시킬까”에서 “과연 다운로드 문화는 무조건 척결돼야만 하는 대상일까”에 이미 가 닿아 있다. 돌 맞을 심정으로 토로하건데, 다운로드 문화는 이 시대의 뚜렷한 패러다임이다. 안다. 이 무분별한 문화 탓에 도산당한 회사와 길거리에 나앉은 노동자, 박살나버린 부가판권시장의 현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등을 돌리자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보자는 거다. 이 모든 걸 단순히 개인의 도덕 불감증에 혐의를 두고 생각해선 증오와 불신, 비관주의밖에 얻어질 게 없다. 이런 시점에서 개방과 공유의 원칙을 기저에 깔고 있는 WEB2.0 시대의 부흥은 명백한 힌트라 할 수 있다. 보다 빠르고 접근하기 용이한, 그리고 사용자가 임의로 참여할 수 있는 정보 인프라의 출연은 더 이상 개인의 요구가 아니라 사회와 시대의 요구다. 지금의 불법이 미래의 불법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고민. 그것이 이제 와 다운로드 문화를 대대적으로 조명하고 분석하려는 이유다.

다운로드가 변화시킨 생활

<모래시계>가 방송되는 시간에 거리가 텅텅 비어 ‘퇴근시계’로 불렸던 시절, 그거 다 옛날 이야기다. 요즘 누가 수목 드라마 보려고 저녁 10시까지 기다리나. 원하는 시간에 HD화질의 녹화파일을 받아보면 그만이다. <노다메 칸타빌레>나 <히어로즈>처럼 국내 방영된 적이 없는 드라마가 화두로 떠오르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다. 이 같은 다운로드 문화의 대중적 파급력은 관련기기와 인터넷 환경변화 등 기술적, 물리적 차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다운로드받은 동영상 파일을 재생하기 위한 멀티미디어 기기의 발전은 거의 빛의 속도에 가까워 보인다. PMP가 나오고 2세대 PMP가 나오더니 DMB와 네비게이션 기능이 결합되고 급기야 동영상 카메라와 무선기능까지 포함된 통합기기들이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다. 과연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라는 말이 허명이 아니다. 동영상 파일들은 PMP나 아이팟 같은 휴대용 종합 멀티미디어 기기, 혹은 휴대전화나 USB메모리 같은 생활전자 기기에 담겨지면서 그 재생영역을 무제한 확장시켰다. 한국에 아이튠스의 동영상 서비스가 개시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이팟으로 최신영화를 보는 게 어려울까. 전혀. P2P웹하드에 가보면 아이팟이나 PSP에서 바로 재생 가능한 MP4 형식의 동영상 파일들이 널리고 쌨다. 그저 고르기만 하면 된다. 대로변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휴대용 기기로 영화를 보는 풍경은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심지어 이건 더 이상 특정 세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PMP나 휴대전화로 영화를 감상하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나? 그렇다면 당신은 대중교통수단을 자주 이용하지 않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야동 보는 할아버지,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순재도 시대 사회적인 맥락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캐릭터가 아니라는 말이다.

인터넷 환경 역시 변화했다. 다운로드 된 동영상들은 현재 위치를 허브삼아 수천 수백 갈래의 넷 고속도로 속에 빨려 들어가면서 거의 실시간으로 그 세를 불리고 증식한다. 다운로드한 파일을 자기 명의로 다시 P2P웹하드에 올리거나 간단한 컨버팅 과정을 거쳐 유튜브 같은 UCC사이트로 전송하는 일이 정크파일을 휴지통에 집어넣어 삭제하는 것만큼 자연스럽다. 더군다나 요즘엔 AVI나 MPG형식의 일반적인 동영상 파일을 UCC사이트용 저용량 포맷으로 바꾸는 작업이 예전만큼 어려운 기술적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UCC사이트들이 자체적인 컨버팅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저 이미지 파일을 등록하듯 어떤 종류의 동영상 파일이라도 관계없이 ‘전송’ 버튼을 클릭하면 될 뿐이다. 다운로드 서비스 속 동영상 콘텐츠의 자기복제와 증식, 전파의 속도를 보면 생명을 가진 유기체라 해도 믿을 정도다. 유튜브와 구글로 대표되는 WEB2.0 시대를 맞아 다운로드 문화는 생활 곳곳에 더욱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중이다.

다운로드가 변화시킨 의식구조

이제까지 설명한 풍경들은 긍정, 부정의 차원을 떠난 가치중립적 현상의 나열일 뿐이다. 이 같은 현상들이 산업 전반에 끼친 영향은 앞서 언급했다시피 시장의 명줄을 잡고 흔들 만큼 치명적이었다. 그렇다면 문화,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대중의 의식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우선 다운로드를 통한 영화 소비는 다양한 형태의 유통구조(비록 저작권자에게 그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 기형적 구조였지만)를 낳아 결과적으로 관람의 기회를 증대시켰다. 누구라도 쉽게 특정 영화를 검색하고 다운받아 감상할 수 있게 됐으며, 심의나 배급문제로 인해 국내 정식 개봉하지 않았던 희귀영화를 보는 일도 예전처럼 많은 기회비용을 지불하지 않더라도 가능해졌다. 물론 “파일 공유를 통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희귀, 예술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는 말이 대부분 최신영화를 받아보는 다운로드 사용자들에게 일종의 방어기재로 악용되고 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저렴한 가격의 웹하드 사용료만 지불하면 지금 당장 <아포칼립토>나 <록키 발보아> 같은 미개봉 해외 화제작들을 받아보는 게 가능하다. <괴물>은 DVD가 정식으로 출시되기도 전에 불법파일이 유포됐으며, 남기웅 감독의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는 개봉 시점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법파일이 유포돼 개봉이 좌절됐다. 다만 여기서 방점이 희귀영화냐 최신영화냐의 문제가 아닌, 어떤 영화든 쉽고 빠른 시간 안에 감상할 수 있게 된 접근성의 확대에 찍힌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같은 관람기회의 확대가 결과적으로 야기한 의식적 부작용은 꽤 심각하다. 우선 전에 없이 영화담론이 축소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양상은 10년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공히 나타난 현상이지만, 최근 1, 2년 사이 한국의 영화 지형도를 살펴보면 얼마나 급진적으로 담론의 쇠퇴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더 이상 아무도 영화를 사유하거나 성찰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영화를 원하는 장소에서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의 변화는 영화를 둘러싼 모든 시선과 철학을 경박하고 속된 영역으로 몰아넣었다. 대중에게 있어 미술이나 문학과는 달리 영화는 단지 소비재일 뿐이다. 자신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예술작품에 대해 논리적 서사보다 정서적 감흥을 더 중요시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더 있을 것”이라며 관련 평론가의 견해에 귀 기울이거나 소통을 시도했던 모습은 유독 영화에 있어서 거의 그 자취를 감췄다. 이해할 수 없는, 혹은 생경한 영화는 단지 못 만든 영화일 뿐이다. 최근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나 <다세포소녀>에 보인 대중들의 격렬한 반응은 각 작품의 영화적 완성도나 미학적 성취의 여부를 떠나 의미심장한 풍경이었다. 영화 사이트와 포털 게시판은 영화를 만든 이들을 향한 성토로 가득 메워졌고, 네티즌이 직접 부과하는 평점은 최저수준을 밑돌았다. 대중은 이 생소한 영화들에 반대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또한 '영화를 다운로드받는' 행동의 불법성에 대해 완전히 무감각해진 것 역시 큰 변화다. 과거 P2P웹하드 서비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의 조심스러운 신중함과는 달리 이제는 불법자료를 공유하고 활용하는 걸 공적인 영역에 드러내는 데 전혀 거리낌을 찾아볼 수 없다. 만화 작가의 홈페이지에 찾아가 “스캔본을 다운받아 잘 봤으니 다음 권도 빨리 내달라”고 요구한다던지, “<히어로즈>의 다음 자막은 왜 빨리 안 만드는 거냐”며 불평하는 모습, 특정 영화의 동영상 파일자료를 요청하는 게시물이 자주 목격되는 건 대중이 좀 더 악랄해졌기 때문이라기보다 다운로드 문화 자체가 아예 일상이 돼버린 탓이 크다. 다운로드 동영상을 활용할 수 있는 기기가 셀 수 없이 많이 출시됐는데, 다운로드 자체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용자도 의외로 많다(휴대용 멀티미디어 기기는 단순히 동영상 파일을 재생하는 기능만 있기 때문에 파일 공유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지 않는다).

다운로드를 둘러싼 발상의 전환

그렇다면 역시 문제는 대중에게 있는 걸까. 영화담론을 축소시키고 불법자료를 다운받는 데 죄의식을 상실해버린 대중을 공개 비판하며 성찰과 자기반성을 요구해야 하나. 개인의 마인드를 문제 삼아 준법정신이나 도덕심에 호소하는 것은 현 상황을 해결하는 데 일말의 도움이 될 수 없다. 대중의 완전무결성을 논하려는 게 아니다. 이미 그런 식의 문제제기가 수도 없이 이어졌지만 아무것도 바뀐 게 없음을 직시하는 거다. 다운로드 문화가 이처럼 빠르고 공고하게 우리 생활 속으로 스며들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P2P웹하드나 네티즌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과 문화가 본격적으로 소통하기 시작한 최근 1, 2년 사이 패러다임의 변화에 기인한 바 크다. UCC사이트들의 인기와 사용자가 생산자가 되는 생산소비자 웹사이트 시대의 전개, 즉 WEB2.0 시대의 출현은 P2P웹하드와 불법 다운로드 때문에 등장한 게 아니다. 공유와 개방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가치가 대중적, 시장적으로 받아들여진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무조건 막아서고 금지하고 적발해서 처벌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이 모든 논쟁의 고된 과정 끝에는 결국 대안판권 창출의 문제가 남는다. 궁극적으로 “다운로드가 더 이상 불법이 아닐 수 있도록” 실 저작권자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 제도적, 기술적 기반확충과 정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안다. 처음 듣는 얘기 아닌 거. 이런 고민이 그간 없었던 게 아니다. 합법적 다운로드시장을 만들어 새로운 산업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작년 이 맘 때에도 똑같이 했던 얘기다. 그 결과 합법적 동영상 다운로드 서비스가 일부나마 제한적으로 실시되기도 했다. 워너브러더스는 자국 내에서 유명 P2P사이트 비트토런트와 영화 판매 및 대여계약을 체결했으며, 한국에서도 iMBC를 통해 다운로드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좀체 풀리지 않는 문제점이 산재돼 있다. 바로 가격과 윈도우 시점(한 편의 영화가 극장 개봉이 아닌 다른 매체를 통해 공개되는 순서, 즉 극장 개봉=>DVD 출시=>케이블 방송처럼 순차적 시점을 의미한다)이다. 최신영화를 다운받는 대중에게 DVD 출시 이후에나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합법적 시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더불어 3백 원에서 7백 원 정도면 영화 한 편을 다운로드받아 볼 수 있는 현실에 편당 2천 원에서 6천 원, 1만 원을 호가하는 가격은 현실성이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어디 있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다운로드를 합법적 영역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만 기울여왔다. 관련 법체계와 제도적, 기술적 환경을 바꾸기보다 현재 존재하고 있는 시스템의 틀에 다운로드 문화를 껴 맞추려 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비용과 시간을 좀 더 절약할 수 있어 보이는 데다, 저작권 이해당사자들이 다운로드=불법이라는 공식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탓이다. 그 결과물은 눈에 빤히 보이듯 현실성 부족한 사업의 출현이다. 이제부터는 역으로 다운로드 패러다임을 중심에 두고 관련 법체계와 제도적 기술적 환경을 변화, 적응시키려는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다운로드 문화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대세라면 그에 발맞춰 유연하게 대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다운로드를 척결해야 할 현상이 아닌 필연적인 문화적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그 가치를 이해하는 것. 그것만이 부가판권시장의 붕괴를 둘러싼 총체적 난국을 타개해나갈 수 있는 여정의 시작이다. 우린 아직 그 첫걸음조차 떼지 못했다. 이건 부러 비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